영양제와 함께 먹으면 나쁜음식이 있을까요?

약국에서 철분제를 드리면 “아침에 커피랑 같이 먹어도 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평소에는 문제없이 먹던 음식도 어떤 영양제나 약과 만나느냐에 따라 복용 방법이 달라집니다. 그렇다고 커피나 채소를 무조건 나쁜음식으로 분류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먹는지와 함께 언제, 얼마나 먹는지를 봐야 합니다.
철분제 옆의 커피와 우유는 시간을 띄워 주세요
철분제를 아침 식사 직후 커피로 넘기는 분이 있습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 안내에 따르면 차와 커피, 우유와 유제품은 철분 흡수를 줄일 수 있어 철분제와 약 2시간 간격을 두는 편이 좋습니다. 차와 커피에 들어 있는 성분, 유제품의 칼슘이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커피를 끊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철분제 복용 시간을 옮기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 8시에 커피를 마신다면 철분제는 오전 10시 이후로 잡을 수 있습니다. 철분제는 대체로 공복에 흡수가 잘되지만, 속이 메스껍거나 아프다면 음식과 함께 복용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는 흡수율만 따지며 억지로 공복 복용을 버티지 말고 처방받은 방법을 확인해 주세요. 오렌지 같은 비타민 C 함유 식품은 철분 흡수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주스 한 잔이 철분 부족의 원인을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칼슘 영양제와 철분 영양제를 함께 드시는 분도 복용 시간을 나누는 편이 좋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 영양제정보실은 칼슘이 철분 흡수를 방해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두 제품의 라벨을 보며 하루 총섭취량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빈혈 때문에 철분제를 처방받았다면 임의로 복용 횟수나 양을 바꾸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과일주스는 복용 중인 약의 이름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건강을 생각해 자몽주스를 챙겨 마시면서 콜레스테롤 약도 복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자몽이 일부 약의 체내 농도를 높이거나, 반대로 흡수를 줄일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일부 스타틴 계열 약과 혈압약 등이 해당하지만 같은 계열의 모든 약에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콜레스테롤 약은 전부 자몽 금지”라고 단정하기보다 정확한 약 이름을 확인해야 합니다.
약과 자몽이 상호작용한다면 복용 시각만 몇 시간 벌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몽을 먹어도 되는 양을 스스로 정하지 말고 약 봉투의 주의사항을 확인하거나 약사에게 물어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과일 농축액이 든 음료나 자몽 성분을 넣은 영양제를 고를 때도 같은 확인이 필요합니다. 반면 자몽을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영양제의 효과가 달라진다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초록 채소는 끊기보다 먹는 양을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와파린을 복용하는 분에게 시금치나 브로콜리가 ‘나쁜음식’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채소를 전부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채소에 들어 있는 비타민 K가 와파린의 작용에 영향을 주므로, 중요한 것은 평소 먹는 양을 갑자기 크게 늘리거나 줄이지 않는 것입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도 와파린 복용 중에는 식단을 크게 바꾸기 전에 의료진과 상의하도록 안내합니다.
가령 평소 나물을 조금씩 드시던 분이 어느 날부터 녹즙을 매일 큰 컵으로 마신다면 복용 전후의 식단이 달라집니다. 비타민 K가 든 종합영양제를 새로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변화는 와파린 효과를 확인하는 혈액검사 수치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담당 의료진에게 알려야 합니다. 다른 종류의 항응고제를 복용한다면 식사 주의사항이 다를 수 있어 약 이름을 기준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음식 궁합보다 먼저 볼 숫자가 있습니다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찾다가 정작 영양제 두 통에 같은 성분이 겹쳐 들어 있는 것은 놓치기 쉽습니다. 종합영양제와 별도 철분제를 함께 먹는다면 각 제품의 철분 함량을 더해 보세요. 미국 국립보건원 영양제정보실이 제시하는 성인의 철분 하루 상한섭취량은 음식과 영양제를 합쳐 45mg입니다. 이는 누구나 45mg을 먹어야 한다는 권장량이 아닙니다. 철분 부족을 치료할 때는 의료진이 이보다 높은 용량을 처방하기도 하므로, 처방량을 이 숫자에 맞춰 임의로 줄여서도 안 됩니다.
약과 영양제 사이의 간격도 음식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갑상선호르몬제인 레보티록신은 철분제나 일부 칼슘제와 함께 복용하면 흡수가 줄 수 있습니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의 의약품 안내는 이들을 레보티록신과 최소 4시간 띄우도록 설명합니다. 아침에 갑상선약을 먹는 분이라면 철분제와 칼슘제를 어느 시간에 둘지 복용표를 함께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제게 복용 상담을 하러 오실 때는 드시는 음식 하나만 말씀하시기보다 약 이름, 영양제 성분표, 하루 복용량을 함께 보여 주시면 판단에 도움이 됩니다. 같은 음식도 누구에게는 평범한 식사이고, 누구에게는 복용 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음식에 ‘나쁘다’는 딱지를 붙이기 전에 현재 복용 중인 약과 실제 먹는 양을 확인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